
are you at peace? (2025)
On October 29th, 2022—Halloween weekend—more than a hundred young people were crushed to death in the streets of Itaewon, South Korea.
The next morning, I woke up in the Netherlands to photos of bodies on a street I had once walked. I opened my window for fresh air and saw people peacefully biking outside. Since then, my world has felt split in two.
There were more tragedies in South Korea, both before and after, mostly claiming young lives. Being far from the source of the tragedy doesn't seem to help me escape it. I am here but also there, or not truly here but only there. The confusion grows stronger. I am too far from where the pain originates, but I still feel it—remotely, collectively. It is a part of the trauma of our era. This project explores how wars and invasions transform into trauma that is passed down through generations.
In Korea, people prepare tofu for those just released from jail. It is both a warning and a plea for them to live clean, not to commit a crime again, like the pure and innocent tofu. I eat, and eat, and eat the tofu. The sense of powerlessness my country instils in me—the feeling that I can do nothing in the face of these endless, repeating tragedies—tells me I’m trapped, no matter where I am.
South Korea has paid a high price in lives to develop the country and to allow people to feed their families in peace, free from the threat of invasion. Older generations believed that no one would dare invade once we became strong. Their most urgent goal was survival — to feed their families after decades of foreign invasions. We developed rapidly, without precedent. However, we now face a significant gap in our safety systems.
The desire to survive gave rise to an obsession with hard work, hard labour, intense pressure on education, and a narrow focus on productivity and efficiency. Ironically, innocent lives were lost in the very pursuit of survival. As someone born in the '90s, I have often witnessed people my age dying in national incidents that could have been prevented with enough care and proper safety measures. These tragedies keep repeating, causing trauma to those of our generation. The repetition only deepens our feeling of powerlessness—we can do nothing but watch them die.
This generational trauma is stacked on top of the last, passed down, inherited.
Where does pain come from? Where could this pain go?
I wish I could have stood with them.
I wish I could have fully escaped.
2022년 10월 29일, 할로윈 주말, 한국 이태원의 거리에서 백 명이 넘는 젊은 사람들이 압사로 목숨을 잃었다.
30일 아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고, 화면에 보이는 건 바닥에 널부러진 사람들의 몸이었다. 창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했고 내 눈으로 보는 세상은 너무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친구들과 떠드는 사람들, 새 소리, 물 소리. 이날 아침 이후 내 세상은 둘로 갈라졌다.
한국에서는 그 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비극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젊은 세대의 목숨을 앗아갔고, 비극의 근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내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기 있지만 동시에 거기에 있다. 아니면 여기 있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만 있다. 혼란은 점점 더 깊어진다. 고통이 시작된 곳과 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고통은 여전히 느껴진다. 멀지만 함께. 그것은 우리 시대의 트라우마의 일부다.
한국에서는 출소한 이들을 위해 두부를 준비한다. 깨끗하게 살라는 경고이자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간절한 바람이다. 나는 두부를 먹고, 또 먹는다. 내 나라가 나에게 심어준 무력감, 끝없이 되풀이되는 비극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감각은 내가 어디에 있든 결국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한국은 나라를 발전시키고, 외세의 위협에서 벗어나 가족을 평화롭게 먹여 살리기 위해 수많은 목숨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기성세대는 우리가 강해지면 더 이상 누구도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고 그들의 가장 절박한 목표는 생존, 수십 년간의 외세 침략 이후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전례 없는 속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제 안전 시스템에는 거대한 구멍이 드러나고 있다.
생존의 욕망은 고된 노동, 교육에 대한 강박, 생산성과 효율성에만 매달리는 집착을 낳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생존을 향한 집착 속에서 무고한 목숨들이 잃어졌다. 90년대에 태어난 나는,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충분한 주의와 안전 장치만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 국가적 사건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너무 자주 목격해왔다. 비극은 반복되었고, 그 반복은 우리 세대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반복될수록 무력감은 깊어진다.
이 세대의 트라우마는 이전 세대의 아픔 위에 겹겹이 쌓여, 전해지고 이어진다.
이 고통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날 수 있는가?
내가 그들과 이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아, 이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are you at peace? (2025)